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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US

미국 와인 여행 (윌라멧밸리) #7. Eyrie Vineyards in Willamette Valley (아이리 빈야드)

다음 방문한 곳은 The Eyrie Vineyards. (https://eyrievineyards.com/)

이 아이리 빈야드는 오레곤 주에서 역사적인 곳이라고 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홈페이지를 보면 이 와이너리를 설립한 David Lett 은 이 오레곤의 윌라멧 밸리 지역에 처음으로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를 심었고, 신대륙 중에는 처음으로 피노 그리를 심었다고 한다. 


테이스팅 룸으로 들어가면 젊은 시절 포도나무 묘목을 들고 서 있는 그의 사진이 걸려있다. 현재는 대를 이어 Jason Lett 이 와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내부엔 포도 사진과 가족 사진이 여럿 걸려있었는데, 보다보면 포도를 기르는 농부의 모습과 와인을 만드는 양조자, 그 과정을 함께 겪어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왠지 모르게 와인에 그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갔던 다른 지역의 어느 와이너리보다 가족애와 인간미가 크게 느껴졌던 곳이었다. 


셀러 도어에 들어가 바에 가면 테이스팅 메뉴를 준다. 사진은 흐리지만, Discovery Flight, Exploration Flight 두 가지가 있었다. 하루 종일 와인을 마시며 돌아다니다 보면 시음이 버겁기도 한데, 와이너리에 따라서 하나의 Flight 를 쉐어해서 시음을 할 수도 있었다. 여기도 그게 가능해서, 우린 Exploration Flight 를 주문하고 둘이서 나눠서 시음을 했다. 

메뉴엔 각 와인의 설명과 병당 가격 등이 적혀있었는데, 역시 부러운 건 club 가격. 우리도 이 동네 살았다면 클럽에 가입했을텐데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맨 마지막에 있는 Library wine 은 올드 빈티지 와인을 글라스로 시음할 수 있는 건데, 우리도 한 잔 시음했다. 


와인 사진이 없는 것도 있고 엉망인 것도 있다. 사실, 테이스팅 와인을 쿨러에서 꺼내어 따라주고는 다시 가져가는데, 우린 소심해서 매 와인마다 사진을 찍겠다고 달라고 하는게 좀 미안하기도 해서 못 찍은 것도 있고 얼른 대충 찍은 것도 있어서 그렇다. 그래도 셀러 도어의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해줘서 고마웠다. 


메뉴 뒤 쪽엔 각 밭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고, 옆의 실린더에 밭 별 흙과 자갈 등을 담아 떼루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와인 시음을 하며 테이스팅 룸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다양한 와인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맛있는 와인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진열된 와인들, 밭의 그림들, 와인 포스터 등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드디어 라이브러리 테이스팅. 라이브러리 테이스팅은 80년대 부터 보관된 화이트와 레드를 글라스로 맛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올드 빈티지들은 마실 수 있으면 가능한 마셔보려고 하는데, 맛 자체를 떠나서 경험의 측면에서 늘 마셔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여기서는 87년 빈티지의 샤도네이를 마셨다. 30년이 숙성된 미국 샤도네이를 또 언제 마실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내 나이만큼 오래된 금빛 샤도네이를 경건한 마음으로 시음했다. 

라이브러리 테이스팅을 하는 올드 빈티지 와인들을 병으로 구입하면 빈티지에 따라 100~400달러 대로 구입이 가능하다.

마음 같아선 이것 저것 사오고 싶었지만, 우린 여기서 피노 그리를 한 병 사왔다. 얼마 전에 마셨는데, 산도와 질감도 좋고 밸런스도 좋고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신대륙에서 처음 피노 그리를 시도한 곳이라는데, 수십년 전 피노 그리 묘목이 미국으로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 마시게 되다니. 왠지 모르게 시공간을 뛰어 넘는 느낌도 든다. 


정감이 가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던 아이리 빈야드. 작고 오붓한 테이스팅 룸에서 오래된 흑백 사진들과 함께 시음했던 와인들은 왠지 모르게 설립자의 수고와 가족애가 함께 느껴지는 듯 했다. 와인을 단순히 점수나 맛, 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18. 8. 18.